(박근종 칼럼) 고물가·고환율 ‘폭탄’ 품고 기준금리 동결, ‘경기둔화’ 벗어날 마중물 되길

편집국 / 기사승인 : 2023-03-02 19: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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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연합회 회장,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
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2월 23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했다. 이로써 2021년 8월 이후 2023년 1월까지 약 1년 6개월 동안 이어진 기준금리 인상 기조는 일단 멈췄다. 한국은행은 코로나 위기를 맞아 0.5%까지 떨어뜨렸던 초저금리가 유발한 통화팽창으로 소비자물가가 뛰자 이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섰다. 이후 지난달까지 총 10회에 걸쳐 기준금리를 0.5%에서 3.5%까지 무려 3.0%포인트나 올렸다.

특히, 한국은행이 이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1월 전망한 1.7%에서 0.1% 낮춘 1.6%로 하향 조정한 수정치를 내놓을 정도로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경기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반증(反證)으로 경기가 급격히 식고 있다는 의미이다. 한국은행이 올해 소비자물가가 3.5%나 오를 것이라 예상하면서도 긴축 중단을 택한 것은 그만큼 심각한 경기 침체를 고려한 고육책(苦肉策)이다. 그야말로 우리의 기준금리 정책은 지금 경기와 물가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 있는 형국이다. 금리를 올려 물가를 잡자니 경기 침체가 우려되고,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동결하거나 낮추자니 물가가 걱정된다. 금리와 물가는 반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가와 경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최근 우리 경기지표는 이미 경기 침체를 가리킬 만큼 참담하다.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역성장(전기 대비 -0.4%)을 기록했다. 올 1분기도 역성장이 불가피하다. 물가는 올해 들어서도 전년 대비 5% 넘게 천정부지로 고공행진 중이다. 올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0.11로 1년 전 같은 달보다 5.2%나 올랐다. 앞으로 1년간의 소비자물가 전망을 보여주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다시 4% 선을 돌파했다. 공공요금 인상을 하반기로 미뤄놨지만 그사이 경제가 획기적으로 나아질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다. 최근에는 소주와 맥주 등 서민 기호품인 주류까지 연쇄적으로 가격 인상이 꿈틀거리고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가계의 실질소득은 계속해서 뒷걸음치고 있고 2021년 한국의 엥겔지수는 12.8%였다. 작년 말 가계대출 잔액은 1,749조 3,000억 원이나 된다. 과도한 가계부채와 금리 인상에 따른 가처분소득 축소로 소비까지 얼어붙고 있다. 막대한 재고가 쌓인 대기업 가동률은 80% 밑으로 떨어졌다. 지난달 백화점 매출액은 1년 전보다 3.7% 줄었다. 할인점 매출액도 2.8% 감소했다. 설비투자도 7.1%나 급감하며 3개월 만에 감소로 전환됐다.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올해 1분기 ‘수출산업경기전망지수(EBSI)’를 지난해 4분기 84.4 대비 2.6포인트 하락한 81.8로 전망했고, 올 2월에 대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2020년 8월 81.6 기록 이후 2년 6개월 만에 최저치인 83.1을 기록했다. 얼어붙은 내수는 풀릴 기미가 없고, 반도체 수출 등이 격감하면서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누적 무역적자는 사상 최악으로 186억3,900만 달러를 기록해 1년 전 같은 기간 69억8,400만 달러 2.67배의 규모로 역대 최대였던 작년 한 해 적자 472억 3,000만 달러의 39.46%에 무려 50일 만에 이르고 있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하향 조정한데다 대내외 여건이 더 나빠져 제로 성장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실업자수는 1년 만에 다시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렇듯 우리 경제가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 │ 총체적 복합위기)’으로 치닫고 있다. 게다가 기획재정부는 지난 2월 17일 ‘2023년 2월 최근 경제 동향(그린북)’을 통해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내수 회복 속도가 완만해지고 수출 부진 및 기업 심리 위축이 지속되는 등 경기 흐름이 둔화하고 있다.”라고 ‘경기둔화’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2월 23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에게 “이번에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을 고려한 결정”이라며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차를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하면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를 기다린 다음에 갈지 말지 봐야 하지 않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한국은행 총재의 설명에서 금통위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경기 침체를 막느냐, 물가 안정을 중시하느냐.’ 갈림길에 선 이 총재는 “더 중요한 것은 금리 인상을 통해 가길 원하는 물가 경로”라고 밝혔다. 이어 “3월부터 물가 상승률이 4%대로 낮아지고, 그 추세가 이어져 연말 3%대 초반까지 내려간다면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의식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3월까지 물가 움직임을 주시한 후 여전히 5%대에 머무른다면 다시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메시지다.

한국은행은 물가를 안정시킬 책임이 있다. 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의 두 정책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우선 택하도록 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경기 대응은 기본적으로 기획재정부 같은 정부 부처가 할 일이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정책은 정부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워야만 한다. 한국은행을 행정부에서 독립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가 안정은 민생의 핵심이며, 서민·중산층의 재산을 지키는 책무다. 경기 침체 와중에 금융시장이 흔들리면 큰일이다. 이번 기준금리 동결로 금융당국의 물가 관리 의지가 흐트러지거나 느슨해져서는 결단코 안 된다. 통화 정책의 방향을 완화로 전환하기에는 도처에 물가 불안 요인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한국은행의 금리 동결은 기대감보다 불안감을 주고 있다. 기축통화(Key Currency │ 국제 결제·금융거래의 기본 화폐)가 아닌 한국의 원화 입장에서 미국 금리를 추종할 수밖에 없는 처지인 한국은행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의 연이은 기준금리 인상(2월 1일 기준 │ 연 4.50∼4.75%)에 따라 현재 한·미 간 금리 격차는 1∼1.25%포인트이다. 기축통화국인 미국보다 한국의 금리가 낮은 것은 정상이 아니다. 문제는 미국의 긴축 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연준(Fed)은 다음 달 20~21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5.0∼5.25%로 0.5%포인트 올릴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경우 한국의 기준금리 3.50%와의 금리 격차는 1.5%∼1.75%포인트나 벌어져 환율 상승으로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며 수입 물가가 더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악화하고, 무역수지 적자의 주요 원인인 에너지 수입 비용을 높여 전기·가스요금을 포함한 물가 상승 압력을 키울 것이다. 또한 국내 금융시장에서 외국인 투자가의 한국 이탈이 빨라지고, 외국자본이 급격히 유출되며, ‘킹 달러(King dollar │ 달러 초강세) 의 폭격’도 심화해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는 등 혼란은 불가피하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도 커진 상황이다.

따라서 한국은행의 긴축 중단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경기 침체와 고물가’라는 최악의 상황에 처한 우리와 달리 미국은 ‘경기 과열과 고물가’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은 올해 경제를 두고 경착륙(Hard landing)도 연착륙(Soft landing)도 아닌 제3의 길인 ‘노 랜딩(No landing │ 무착륙)’ 시나리오가 거론될 정도의 경기 과열로 기준금리를 예상보다 더 높여야 할 상황에 봉착해 있다. 당연히 지난 2월 1일 ‘제롬 파월(Jerome Powell)’ 연준(Fed) 의장이 ‘디스인플레이션(Disinflation │ 인플레이션 완화)’이란 단어를 쓰면서 물가와의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신호나 마찬가지로 시작된 랠리(Rally)는 길지 못하고 싱겁게 끝났다.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한계를 지닌 한국의 통화 정책은 결국 기축통화국(Key currency)인 미국을 추종할 수밖에 없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데 우리만 손을 놓고 있다가는 급격한 자본 유출이라는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연준(Fed) 이사회는 지난주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보다 6.4% 올랐고, 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보다 5.6%, 전월보다 0.4% 각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는 근거로 예상보다 높은 물가 상승률에 더 큰 폭의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결단코 가볍게 여길 사안이 아니다.

한편 금리 인상 중단은 부채가 많은 금융 취약계층을 한숨 돌리게 할 것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물가 안정 기조가 확고해지면, 정책기조를 경기 쪽으로 전환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어, 경기 부양에 대한 기대도 점차 커갈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정책의 무게를 경기 쪽으로 옮기고 싶더라도, 가계부채를 다시 늘리는 정책 수단만은 경계해야 한다. 한국은행 집계를 보면, 지난해 말 1,749조 3,000억 원에 이를 정도로 이미 거대하게 부풀어 있고, 가계부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 탓에 가계의 소비 여력은 크게 위축돼 있다. 뒤탈을 없애려면, 차제에 적잖은 조정이 이뤄져야 한다. 가장 위험한 정책이 주택자금 대출을 늘리는 부동산 경기 부양이다. 정부가 그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선 결단코 안 된다.

이처럼 경기 침체 속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 물가 상승을 동반한 경기 침체) 위기’에선 구조 개혁과 서비스산업 혁신을 통해 경제 체질을 개선하는 게 근본 처방이다. 따라서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이 시급하지만, 꽉 막힌 정국과 이해관계자의 반발 등을 고려하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단기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는 수출 활력을 높이는 정책이다. 수출은 성장과 물가, 환율 안정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거의 확실한 방책이다. 지난 2월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4차 ‘수출전략회의’에서 올해 우리나라 수출 목표를 6,850억 달러(한화 약 890조 원)로 잡고 수출 드라이브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이 목표는 사상 최대치였던 지난해 6,836억 달러보다 0.2%인 14억 달러 늘어난 수치다. 대통령은 “고금리 복합위기를 돌파하는 일은 오로지 수출과 스타트업의 활성화”라며 “원전, 방산, 해외 건설, 농수산식품, 콘텐츠, 바이오 등 12개 분야에 대한 수출과 수주 확대를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정부는 이미 재정 긴축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내세우면서도 정녕 중요한 대응 수단을 스스로 내려놓곤 했다. 결국 남은 것은 주문처럼 되풀이되는 ‘감세’와 ‘규제 완화’ 뿐이었다. 찬찬히 반추하고 뒤돌아볼 대목이다. 경기둔화의 긴 터널로부터 보다 빨리 벗어나려면 수출 증대와 과감한 투자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 경제정책과 한은 통화정책 간 조화와 균형 그리고 조율과 동화가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한쪽에서 물가를 잡기 위해 돈줄을 옥죄고 있는데 다른 쪽에서는 공공요금 인상이나 재정 퍼주기처럼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엇박자가 벌어져서는 결단코 안 될 일이다. 정부와 한은은 머리를 맞대고 국내외 경제·금융 상황에 맞춰 우선 정책과제를 설정하고 정책 공감 대역을 넓혀나가야 한다. 정책 방향이 서로 다르거나 수단이 서로 충돌하는 것은 없는지 시행시기는 적절한지 등을 꼼꼼하고 촘촘히 따져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는 데 지혜를 모으고 ‘경기둔화’를 벗어날 마중물이 되도로 국가역량을 총 집주(集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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