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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미(對美) 관세 스트레스가 본격화되면서 수출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도 반도체와 자동차가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 했고, 미국에만 의존하지 않고 지역 다변화의 힘이 컸다. 우선 품목별에 있어서 반도체 월간 수출액은 인공지능(AI) 서버 수요를 기반으로 166억 1,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AI의 핵심 인프라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가 탄탄한 데다, 범용 제품 가격도 오름세로 반전한 영향이다 자동차도 전기차·하이브리드차를 중심으로 64억 달러를 달성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수출을 16.8% 확대해 9월 기준 사상 최대실적을 올렸다. 그 밖에 선박(전년 같은 기간 대비 21.9% 증가↑), 바이오헬스(35.8%↑), 화장품(28.5%↑), 농수산식품(21.4%↑), 가전(12.3%↑), 일반기계(10.3%↑), 섬유(7.1%↑) 등이 동반 상승하며 수출의 역군(役軍)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역별로도 미국을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수출이 증가했다. 특히 아세안(17.8%↑), EU(19.3%↑), 중남미(34.0%↑), 일본(3.2%↑), 중동(17.5%↑), 인도(17.5%↑), 독립국가연합(CIS·54.3%↑) 등의 수출이 크게 늘면서 미국 시장 의존도를 다소 낮추는 성과도 있었다. 미국의 품목 관세 부과로 대미 수출이 줄었지만, 유럽연합(EU), 독립국가연합(CIS) 등 대체 시장 개척에 성공했다.
문제는 이처럼 9월 지표가 좋게 나왔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우리 앞에 목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이 활기를 띤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착시효과에 불과할 뿐 결코 섣불리 안도할 수는 없다. 올해 9월은 조업일수가 작년보다 4일 많아 기저효과가 크게 작용했다. 실제 일 평균 수출액은 27억 5,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오히려 6% 줄어든 셈이다. 게다가 올해 10월에는 긴 연휴가 포함돼 조업일수가 줄어드는 만큼 수출 실적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과 미국은 관세 협상 세부안을 놓고 고도의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과 미국이 관세 후속 협상에서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난항인 가운데 미국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행정부의 도를 넘는 한국 압박이 최고조에 이르러 관세 협상은 교착 상태에 빠져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월 25일(현지 시각) “한국이 미국에 투자할 3,500억 달러(약 494조 원)는 선불(Up front)”이라고 못을 박으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처럼 대미 투자 펀드 조성, 무제한 통화 스와프 체결 등의 이슈에서 의견 차이가 상당하다. 협상이 장기화하거나 틀어지게 되는 경우 수출 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자동차 업계는 이미 지난달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싸우고 있일 뿐만 아니라 골대마저 미국 마음대로 이리저리 옮겨지고 있는 형국이다. 더구나 유럽과 일본산 자동차의 관세는 15%로 낮아진 데 반해 한국산은 25% 그대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출 다변화의 성과가 일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EU 수출은 19%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CIS는 무려 54% 증가했다. 중남미, 아세안, 인도 등 신흥시장에서도 두 자릿수 성장세가 이어졌다. 미국 시장의 공백을 일정 부분 메워 준 셈이다. 하지만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상품 수출 비중은 36.7%로 주요 20개국(G20) 중 1위다. 수출이 무너지면 국가 경제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의 제조업 비중은 2011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30%로 정점을 찍은 후 하락 추세다. 지난 7월 27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27.6%로 집계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15.8%)을 크게 상회(上廻)하는 1.7배에 달한다. 독일(20.1%)과 일본(20.7%)보다 높다. GDP의 36.7%를 차지하는 수출 대부분이 제조업에서 나온다.
정부는 대미 관세 협상에 속도를 올리는 동시에 주력 수출 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수출 기업들도 각오를 단단히 할 필요가 있다. 늘 위기를 기회로 바꿔온 저력을 다시 소환해야 한다. 관세 부담을 넘어설 제품력과 기술 혁신은 기본이다. 미국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수출 시장을 찾는 작업에도 속도를 내야 한다. 하지만 반도체와 자동차 편중의 수출 구조적 취약성은 여전하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40%가량이 미국과 중국으로 향하는 편중된 수출 구조를 다변화하고 주력 품목의 쏠림 현상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지난 10월 3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난해 미국 수출액으로 전년 대비 10.5% 증가한 1,278억 달러, 중국 수출액은 6.6% 늘어난 1,330억 달러를 올렸다. 미·중 수출 비중은 지난해 전체 수출액 6,838억 달러 대비 38.13%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엔 미국 수출액이 전 년 대비 3.7% 감소한 621억 8,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중국은 604억 9,000만 달러로 전년 대비 4.6%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단순 계산으로도 연간 미국 34억 달러, 중국 120억 달러의 수출 감소가 예상된다.
한편 7년 만의 업황 상승기가 장기간 이어지는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본격화했지만, 반도체 한 품목이 전체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상태는 외부 충격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반도체가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25.2%로 여전히 높은 반도체 의존도도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 중 최우선 과제다. 자동차도 관세·환경규제·보호무역 장벽이 동시에 강화되면 성장세 유지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미국과의 관세 후속 협상이다. 협상이 지연될수록 수출 기업은 관세 부담으로 채산성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중소기업은 더 견디기 힘들 수밖에 없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은 글로벌 분업구조를 흔들 수 있는 요인이라는 점에서 우리 기업들이 추진하고 있는 시장 다변화 정책에 미칠 영향도 적지 않다. 반도체·자동차·조선·철강 등 전략 산업의 경쟁력을 높여 수출 시장과 수출 품목 다변화를 최우선 목표로 정부는 더 정교하고 더 치밀한 전략으로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이유다. 무엇보다도 3,500억 달러 대규모 투자 이전 ‘무제한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을 통한 정교한 전략으로 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한국 수출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는 노력을 더더욱 기울여 ‘수출 코리아’ 위상의 입지 지속을 한·미 통상협상으로 완성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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