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최재규씨 "속 한번 썩여본 적 없는 착한 맏딸"
대학 동기 강순구씨 "전원 구출 오보…지금도 분통 터진다"
후배들 "올해는 조용히 고인 뜻 기릴 것…추모제 의미 퇴색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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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희생자 故 최혜정 교사 |
(서울=포커스뉴스) "걱정하지 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 나갈게"
2014년 4월 전해진 이 한 줄 글귀는 많은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스물 네 살, 꽃다운 청춘은 10여명 어린 생명을 구해냈지만 정작 자신은 화를 면하지 못했다.
'세월호 의인' 경기 안산 단원고 2학년 9반 담임교사 고(故) 최혜정씨 이야기다.
참사 당시 탈출이 쉬웠던 5층 객실에 머물던 최씨는 밖으로 나가기는커녕 학생들이 있는 4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이미 배가 기운 상황에서 선미 중간, 창문도 없는 객실로 그녀는 망설임없이 향했고 결국 그곳에서 24년 짧은 생을 마감했다.
어느덧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진실은 여전히 바다 가운데 잠겨있고 최혜정씨를 비롯한 세월호 의인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흐려져 가는 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세월호를, 단원고 최혜정 교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녀는 착한 맏딸, 성실한 동기, 훌륭한 선배로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있었다.
◆ 父 최재규씨 "좋아하던 막걸리 한잔 같이할 수 있었으면"
최재규(56)씨는 최혜정씨를 착하고 책임감 넘치던 맏딸로 기억했다.
그는 "일남이녀 중 맏딸이었다. 착하고 똑 부러져서 사촌이고 시골 할머니고 아끼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며 "맏이라 신경도 많이 못 썼는데…부모로서 해준 게 아무것도 없어서 미안하고 고마웠다"고 회상했다.
최씨는 4월이 되면 유독 딸이 많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함께 걷던 거리를 혼자 걷거나 같이 다니던 맛집을 들렀을 때 생각이 더욱 간절하다고 했다.
그는 "걔가 막걸리를 참 좋아했다. 자주 같이 한잔 하면서 인생이야기도 하고 그랬는데…같이 막걸릿잔 부딪던 때가 그립다"라며 "만약 혜정이가 눈 앞에 있다면 이제는 너 하고 싶은 거 다하라고, 공부고 뭐고 그냥 마음대로 하면서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그날 최재규씨는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전북 변산면 채석강 어귀에 서서 연무가 자욱이 낀 잔잔한 바다를 가만히 지켜봤다고 했다.
그렇게 잔잔한 바다에서 그런 참사가 일어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고 했다.
사고 당일 최씨는 혜정씨에게 "그래도 잔잔하니 파도는 없겠다. 조심히 올라와"라고 말했고 혜정씨는 "응"이라고 대답했다.
부녀는 이것이 그들의 마지막 대화가 될 것이라고는 미처 알지 못했다.
최씨는 "사고 당일 그길로 안산으로 올라가 아내만 차에 태워 바로 팽목항으로 향했다. 직감이라는 게 있지 않나. 딸아이라도 데리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체육관에 자리를 잡았다"며 "이튿날 새벽에 웅성웅성하더라. 2학년 9반 선생님 시신이 발견됐다고. 참 너무 현실적이지가 않아서 슬픔도 제대로 못 느꼈다"고 당시의 심경을 전했다.
최씨는 가끔 꿈에 혜정씨가 나온다고 말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버지를 목놓아 찾는다고 했다.
최씨는 그럴 때마다 아직 바닷속에 잠겨있을 혜정씨의 가방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딸의 흔적이라도 찾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는 "자꾸만 아쉬움이 더 커진다. 무엇하나 해결된 것이 없지 않으냐"며 "부디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 최소한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만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최씨 부부는 세월호 2주기가 되는 오는 16일을 경기 시흥시 대각사에서 보낼 계획이라고 했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매년 그곳에서 혜정씨의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최씨는 "세월호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지만 안타깝고 답답한 것이 사실"이라며 "지금까지도 잊지 않고 기억해주고 싸워주는 사람들이 있어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고 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 최혜정씨 모교 동기·후배들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상냥했던 친구…올해는 조용히 고인 뜻 기릴 것"
최혜정씨와 동국대학교 역사교육학과 09학번 동기인 강순구(26)씨는 그녀를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동기들에게도 상냥했던 친구"로 기억했다.
공부에, 동아리 활동까지 무엇하나 놓치지 않았던 친구였다.
강씨는 친구를 잃은 그날 말할 수 없는 답답함과 분노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언론은 끔찍하게도 사망자 숫자에 마치 올림픽 메달 경쟁이라도 하듯 매달렸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되풀이해 보도했다"며 "혜정이가 어떻게 됐는지 몰라서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는데 무의미한 내용만 늘어놓는 언론을 보며 허탈하고 참담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언론에서는 이제 세월호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번 총선에서도 세월호에 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부디 이 가슴 아픈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언론과 정치계가 함께 노력해줬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강씨는 세월호에 피로를 호소하는 이들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그는 "설사 본인은 이 사건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해도 타인이 기억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조롱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강씨는 혜정씨와 추억을 이야기해달라는 질문에 "여러 가지 소중한 기억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간직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한편 최혜정씨의 모교 동국대학교에서는 오는 16일에도 지난해에 이어 그녀를 기리는 추모제가 열릴 예정이다. 이를 위해 역사교육학과 후배들이 묵묵히 추모제 준비를 하고 있다.
다만 학생들은 추모제를 조용히 치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지난해 너무 많은 언론이 몰린 탓에 정작 추모의 의미가 퇴색해 버렸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이민수(24) 동국대학교 역사교육학과 총학생회장은 "훌륭한 선배의 희생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은 언제나 같다. 다만 추모의식을 하나의 흥밋거리로 생각하지는 말아줬으면 한다"며 "올해는 조용하게 선배의 숭고한 뜻을 기억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저마다 혜정씨를 추억하는 방법은 달랐지만 한가지만은 꼭 같았다. 그것은 세월호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마음이었다.
2년 전 아픔을 잊지 않으려는 사람들, 참사의 현장에서 숭고한 희생을 보인 의인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월호는 아직도 모두들 가슴 속에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 10여명을 구하고 숨진 고(故) 최혜정 교사. <사진제공=최재규씨>고(故) 최혜정 교사는 안산 단원고에서 처음으로 교편을 잡았다. 사진은 제자가 최씨에 보낸 쓴 편지. 최재규씨에 따르면 학생들은 최 교사를 언니처럼 따랐다고 한다. <사진제공=최재규씨>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건물 앞에 마련된 고(故) 최혜정 교사 추모비. 최씨는 동국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했다. 매년 4월 16일 이곳에서 그녀를 기리는 추모제가 열린다. 장지훈 기자 jangpro@foc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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