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 길 청 칼럼 코로나 출구조짐에 즈음하여

편집국 / 기사승인 : 2022-10-07 16: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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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투자분석가 엄 길 청 Ph.D.
지속가능한 세상의 꿈은 가능한지 알았다. 이제부터 평화는 온전한 인류공동의 가치이기를 바랐다. 풍요로운 미래사회는 반드시 온다고 생각했다. 무병장수도 언젠가 손에 쥘 수 있다고 보았다. 무기란 무기는 다 버려야 한다고 바랐다. 그러나 2020년 2월 코로나19 창궐이후의 지구는 그야말로 천만의 말씀이다. 여기에다 2022년 2월에 온 인류의 가슴이 또 한 번 러시아의 포성으로 무너져 내렸다.
어느 날 한국 공항에 도착한 한 외국인 여행객에게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한국의 코로나19 팬데믹은 사람들의 평온한 삶을 송두리 채 앗아갔다. 모두가 학교도 직장도 못나가고 졸업식도 못했다. 자녀도 못 만나고 운명한 노부모들이 한 두 분이 아니고, 아직 밀린 혼사를 다 못 치른 부모들도 천지다. 누구는 날벼락처럼 부모자식을 잃었다. 거리에 생업을 둔 사람들은 대부분 일거리를 잃었고, 서로 만나야 벌이가 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빚으로 연명한지가 얼마인지도 모른다.
이제 정부는 조심스럽게 2023년 1/4분기경이면 코로나 상황에서 정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고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팬데믹 대유행 종식의 즈음이 2023년 초반일거라고 같은 언급을 했다. 물론 이게 어디 끝나서 끝내는 것이 아닌지 우리는 다 안다. 무도한 전쟁이 덮친 지금, 더 이상 이렇게 끌고 갈 수는 없어서 끝내야 하는, 그야말로 대놓고 의도하는 지구적 우격다짐이기도 하다. 그렇게나마 코로나가 이제는 그 끝이 보인다.
투자분석가는 미래의 기대가치를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한다. 40년을 그런 일을 하고 지내오면서 기왕이면 오래오래 시간을 믿고 투자하고 기다리고 수확하고 또 다른 미래기대에 마음을 심는 일들이 많아지기를 늘 투자 환경에 바라고 살아왔다. 그러나 다시는 그런 깨알 같은 순진한 기대는 미래에 걸지 않아야 하는 일임을 저 숱한 가계부채와, 수많은 사람의 생 떼 같은 목숨을 잃고서야 깨달았다. 세상의 역사 속의 모든 악몽은 언제나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더욱이 러시아의 흉포한 이웃 나라 공격을 보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게다가 저 전쟁이 서로 뿌리가 남다르지 않는 가까운 민족 간의 공연하고 피비린내 나는 처절한 전쟁이라서 지켜보는 한국인의 마음은 더욱 아프고 힘들다. 세상사가 돈이면 다 된다고 보지도 말아야 한다. 미국은 그런 정책을 믿고 종내(after all) 달러를 잘 풀다가 돌연 러시아 전쟁도발을 만나서 그 돈들이 하이퍼급의 인플레이션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칼날임을 알고 지금 혼쭐이 나고 있다. 미국과의 정치경제적 관계도가 낮은 다른 나라들은 지금 고달러와 고금리의 파도에 타격을 입고 좌초위기에 몰리기도 한다. 이 와중에 미국은 프랜드리 쇼어링(friendly shoring)을 들고 나온다. 미국과 친하고 믿을 수 있는 나라끼리 잘 지내자는 국제관계의 새로운 룰이다. WTO나 우루과이라운드는 어디 갔으며, 리우회담이나 교토의정서는 어쩌란 말인가.
자이언트 스텝을 금리인상에 사용한다면 이건 공황대첩이다. 이후의 디플레이션이나 스태그플레이션은 뻔히 알고도 하는 징벌적 처방이고, 미필적 불황 조장책이다. 지금 그런 일이 공공연히 자심하게 벌어진다. 잘 안 풀리면 더한 일도 나올게다.
투자자는 역사를 보는 안목의 냉정함이 이래서 더욱 요구된다. 자연을 보호하고 인권을 사랑하고 평화를 지키려는 희망이 아직도 누구나의 마음에 가득한 것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그게 잘 이루어지지 않는 난제이기 때문이다. 정치인이이나 종교인들이 그런 세상을 사람의 의지와 기도로 풀어가려고 하는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들은 누천년이 흘러도 늘 사라지지 않는 정치와 종교의 주제로 남아있다.
증권시장은 그 출발이 기업의 육성에 있다, 그와 함께 투자자의 보호와 소득의 재분배기능이 있다. 그런데 이 조차도 시간이 가면서 여기서는 큰돈을 빨리 벌 수 있는 한낱 머니 게임장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숱하게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증권시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세상에 알리고 있다는 게 더 문제이다. 농사를 하던, 유목을 하던 미래의 이익은 반드시 일정한 인내와 소정의 시간이 키운다. 누군가 젊은 나이에 기업으로 성공을 하고 투자로 성공을 했다면 그는 누구보다 시간대비 치열한 노력을 경주한 결과이다. 그리고 모험과 기다림을 스스로 강행한 대가이다.
합리적인 초과수익은 없다. 주식시장은 장기적으로 6-8%의 수익률을 미국시장이 보여준다. 장기 채권시장이 1-2%에 있을 때의 위험보상기대의 평균치이다. 부동산은 3-4%내외를 넘나든다. 이 기대수익 구조의 근간은 전쟁이나 기후변화나 사회동요 등이 역사적으로 담긴 수치이다. 그런데 갑자기 금융시장이 나빠지거나 전쟁이 생기거나 기후변화가 오거나 사회혼란이 오면 이런 역사적 기대치의 이해보다는, 당시의 심리적인 동요가 더 시장에 영향을 준다. 심리가 기업을 키우거나 소득을 분배하거나 투자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세상의 이슈에서 멀어진 상태에서 나만의 담담하고 진취적인 생각이 분명할 때 투자시장은 서민에게 힘을 준다.
주택시장은 원래가 투자시장으로 온전히 작동하기는 어려운 특수한 시장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 어느 나라든 주택은 사유재와 공공재의 가치가 혼재한다. 다만 그런 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항상 구매자가 투자자로 몰려오길 바랄 뿐이다.
주택은 사람에 따라 그 투자사상이 전혀 다르다. 집을 하찮아 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여기 저기 떠돌아다닌다. 영국은 18세기 이후 산업혁명으로 근로자가 도시에 모이고 상업과 문화가 도심에서 일어나면서 도시의 도심이 부동산 가치가 모이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산업이 변하는 지금, 이후의 장차 주거자산의 집합과 소유의 추이를 특정하기는 참 어렵다. 부동산은 투자대상이기 보다 개별적인 재무취향이다.
정치인들이 산업이나 재산의 전문가들이 아니다. 행정가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나라를 운영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다. 이건 금융인이나 부동산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그런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재무투자는 순전히 국민 개인이 스스로 정하고 혼자 행동하는 일이다. 미래의 산업과 기업의 역할이 계속 존재한다면 증권시장은 존재한다. 사람들이 도시에서 늘 모여 활동한다면 부동산도 시장의 면모를 지킬 것이다. 우리도 이제 우주선이 달 탐사를 시작한다. 위험에 빠진 지구가 유일한 인간의 거주대상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에서 어딘가를 새롭게 찾으려고 시작해보는 노력들이다. 마치 15세기의 콜럼버스 항해 때와 같은 시도이다. 그 때도 대 전염병과 전쟁으로 유럽은 초토화 된 시기이다. 그들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필요한 시기였다.
머지않아 국민소득 4만 달러를 앞둔,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는 우리나라는 이제 개인의 경제적 성과가 모여서 국가의 경제통계가 이루어지는 국민노동과 인간기술의 나라가 아니다. 국가는 국가의 돈으로 국가의 지성으로 우주탐사도 가고 해양탐사도 가고 자율도시도 만들고 신 재생에너지도 새로이 탐구한다. 이런 국가미션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생활이익이 일하는 목적이 아니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이 남극에서 가족을 보지 못하며 고독한 국가연구를 수행하겠는가. 어린이나 청소년이나 청년에게 재무투자 경험을 조기에 권하는 일은 이래서 조심해야 한다. 국익이나 공익의 꿈을 가질 나이에 탐욕스런 개인의 재무욕구를 공연히 어려서부터 자극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영악함은 개인의 위대함보다 절대 못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펜데믹은 이제 그만 마쳐야 한다는 지구지성이 선진국에서부터 모이고 있다. 당장 겨울을 앞두고 러시아가 피운 전쟁의 불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고물가의 인플레이션도 이것부터 관리가 되어야 돌파구가 마련된다.
언제나 기업은 고난 속에서도 기업의 노력으로 어려움을 이기며 자란다. 그 중심에는 혁신성과의 의지가 있다. 어려운 상황을 돌파하려는 내부의 줄기찬 도전이 있다. 그래서 인공지능과 빅 데이터가 와도 기업의 인재들은 언제나 기업가치의 중심이 된다. 주식투자자는 이런 기업 사람들의 외부 지지자들이지, 내 돈이나 탐하는 머니 게이머가 아니어야 한다. 이 어려운 시기에 기업을 지지하고 산업에 힘을 몰아주는 선한 사람들에게 증권시장은 돈을 버는 장소가 아니라 생산적인 미래 소망을 거는 장소이다. 가벼운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주식시장이나 주택시장 참가자에게는 그나마도 전혀 필요하지 않다. 그걸 버려야 진정한 나의 선택과 기다림의 끝이 보인다. 사람의 욕심은 탐욕과의 경계가 없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보면 자본의 결실은 선한 자기믿음의 열매 같은 것이다.
코로나 출구전략의 다음 카드는 전쟁의 해결책이다. 휴전이 아니라 이 일을 도모한 불씨가 제거될 때 까지 전쟁의 불행은 지속될 수 있다, 고 환율, 고금리, 고물가의 불씨도 그래서 푸틴과 시진핑 같은 사상적 파괴행위자들을 원인제공자로 반대쪽에서 지목을 하고 있다. 사상과 종교의 갈등은 늘 전쟁을 부른다, 사상독재자들이 이길지, 반대쪽의 인류가 이길지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윤곽이 나올 조짐이 보인다.
그래서 먼저 코로나부터 마무리 국면으로 간다. 이들보다 더한 전쟁광들도 마침내는 그들의 내부에서 소멸됐다. 공산주의 독재자 스탈린이 사망한 해 1952년에 왕위에 오른 영국여왕이 세상을 떠났다. 장차 러시아 공산당의 미래에 큰 변화가 암시되는 것은 아닌지 한번 운명처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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