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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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공급망을 다변화하여 북미 지역에 강력한 반도체 클러스터(Cluster)를 구축하기로 한 것이다. 국경을 맞댄 이들 3국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계승해 2020년 출범한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참여국들이다. ‘반도체 굴기(崛起 │ 우뚝 솟음)’를 내세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핵심 분야 생산시설을 아시아에서 북미 지역으로 옮기겠다는 의미다.
미국이 막대한 보조금을 내세워 반도체 생산시설을 끌어들이는 상황에서 이웃 멕시코·캐나다와 반도체 분야 공급망 재편 협력을 강화한다는 것은 생산 주도권을 아시아 국가들로부터 북미로 이동시키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블룸버그(Bloomberg) 통신은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이 전날 양자 회담을 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멕시코 대통령에게 미국의 반도체 투자 붐을 이용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하자고 했다고 보도했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이웃 국가들과 탈(脫) 아시아 공급망 동맹을 선언한 가운데 애플은 내년부터 한국 기업이 공급하는 디스플레이를 자체 생산할 것이라고 한다. 이르면 내년 말 애플워치에 사용하고, 적용 범위를 차츰 아이폰, 아이패드 등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는데 당연히 한국 부품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질 것은 자명하다. 중국에 밀리고 있는 한국디스플레이(K-Display)의 입지가 더 좁아질 수 있어 걱정이 태산이다. 현재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이폰 14’에 탑재되는 디스플레이의 70%를, LG디스플레이는 20%를 공급하고 있다. 애플워치와 아이패드 공급 물량도 상당하다. 두 곳 모두 전체 매출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비중은 90% 정도로 절대적이다. 문제는 애플처럼 핵심 부품을 직접 만들려고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공급망을 재편하는 상황에서 외부 의존도를 줄일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을 고객사로 둔 한국 기업에는 날벼락이나 다름없다.
그동안 10년간 선두를 지켜온 한국디스플레이(K-Display)업계는 이미 중국산 저가 물량 공세에 밀려 고전하다 지난해 글로벌 매출 1위마저 중국에 뺏겼다. 2017년 44%에 달했던 점유율은 2021년 33%로 급추락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중국은 21%에서 41.5%로 급상승하면서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최근에는 저가 물량 공세로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빼앗은 중국이 국내 디스플레이업계의 먹거리인 아이폰용 올레드(OLED │ 유기발광다이오드) 시장까지 넘보고 있다. 한국은 5~6년 전만 해도 고부가가치로 미래 먹거리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을 거의 100% 장악했지만 2021년 점유율이 83%까지 뚝 떨어졌다. 반면 중국은 2017년 1%대에 머물렀는데 2021년 16.6%까지 급상승했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지원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야금야금 빼앗는 모양새다. 이렇듯 ‘반도체 굴기(崛起)’는 매섭다.
중국의 디스플레이 1위 기업인 BOE(징둥팡 │ 京東方)가 삼성디스플레이가 독점하는 아이폰 디스플레이 패널 수주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BOE가 내년도 추가 투자까지 한다면 생산력 확대로 삼성디스플레이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커진다. BOE는 올해 초 투자를 확정해 ‘아이폰 15’나 ‘아이폰 16’ 신규 모델 수주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BOE가 4억 달러를 투자해 베트남 북부 지역에 두 곳의 공장을 새로 건설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국내 점유율은 중국 업체에 밀려 떨어지는 추세다. 한국의 주력 업종들이 중국의 대공세는 물론이고, 이제 자국 중심의 탈(脫) 아시아 공급망 재편에 속도를 올리고 있는 미국의 ‘견제와 이탈’까지도 걱정을 해야 할 궁색한 처지가 됐다. 그야말로 북미 3국 공급망 동맹과 고사 위기에 봉착한 한국디스플레이(K-Display)의 새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
문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일시적이거나 단편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은 자국 제조업 부활을 위해 여야 정치권과 정부, 기업이 한목소리로 ‘메이드 인 아메리카(Made in America)’를 외치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의 탈(脫) 아시아, 탈(脫) 한국 움직임은 반도체, 디스플레이를 넘어 다른 제품에도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중국대로 막대한 보조금을 쏟아부어 첨단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중국은 2025년까지 1조 위안(약 184조 원)을 지원해 반도체 자급률 70%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반도체에서 미국의 노골적인 견제를 받는 상황에서 자체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반격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자국 내 반도체 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50~100%까지 감면해주면서 적극적인 투자를 독려하고 있다.
다행히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폼팩터(Form factor │ 물리적 외형) 혁신을 통해 디스플레이산업 주도권을 지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폴더블과 슬라이더블을 결합한 ‘플렉스 하이브리드’를, LG디스플레이는 ‘360도 폴더블 올레드’를 선보이며 차세대 디스플레이 시장을 놓고 본격 경쟁을 시작했다. 지난 1월 13일 디스플레이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 국제전자제품박람회) 2023’에서 선보인 플렉스 하이브리드와 360도 폴더블 올레드는 관람객들로부터 가장 관심을 받은 대표적인 제품으로 꼽힌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폼팩터(Form factor)의 변화뿐만 아니라 기존 올레드에서 한 단계 진화된 마이크로 올레드, 마이크로 LED 등 새로운 디스플레이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작금의 글로벌 시장은 무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선진 기업의 질주와 후발 국가의 추격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게다가 갈수록 거세지는 자국 중심주의와 보호주의 조류는 삼성·LG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도 홀로 헤쳐나가기가 힘들다. 융합과 혁신의 시대에 이를 견인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어느 한순간도 긴장을 풀거나 잠시라도 방심해선 결단코 안 된다. 최신 IT 트렌드 파악을 통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고 피나는 노력으로 융합과 혁신을 선도해 미래의 잠재 시장을 선점해나가야 한다. 최근 정부가 대기업의 반도체·배터리 등 시설 투자에 세액공제율을 15%로 높이고 투자 증가분에 추가 공제까지 해주기로 했다지만 이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전략산업에 대한 더 과감한 지원과 규제 혁파가 필요하다.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을 유도하려면 정부가 ‘모래주머니’로 불리는 규제 사슬부터 서둘러 제거해야 한다. 또 세제·예산·금융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경쟁국 기업들과 대등한 여건에서 뛸 수 있도록 산업인프라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국회도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를 지원하기 위한 법안에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대승적 결단으로 서둘러 적극 입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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