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우 칼럼> 다시 읽는 조선상고사-고구려 건국연대의 재정립과 단재 신채호(제1회)

조원익 기자 / 기사승인 : 2019-03-11 14:4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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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

 이 글은 필자가 앞으로 20여회에 걸쳐 연재하게 될 ‘고구려 건국연대는 기원전 217년이다.’에 관한 서설이다. ‘고구려 건국연대는 기원전 217년이다’는 2019년 3월 5일 한국간도학회가 주최한 ‘3·1 항일투쟁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 고구려와 간도의 왜곡된 역사와 영토문제 분석’에서 필자가 ‘고구려 건국연대의 재정립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발표 했는데 그 논문을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칼럼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런 서설 없이 곧바로 칼럼을 연재한다고 해도 누가 무어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반드시 밝히고 넘어가고자 하는 이유는 우리가 흔히 입으로는 칭송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진실을 가리거나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 밝히지 못하는 현 세태에 대한 아픔을 토로하고자 하는 것이다.

 

 차라리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이라면 아쉬워하며 오히려 가르쳐 주어야겠지만, 알면서도 밝히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엄청난 죄악을 범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침묵은 금이라고 하면서 어떤 의견에 침묵하는 것은 긍정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진실을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는 수단으로 작용하는 침묵이다. 그런 침묵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이들을 현혹함으로써, 작게는 어떤 공동체로부터 크게는 나라와 민족에게 엄청난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히 단재 신채호라는 우리민족 일 만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역사학자를 입으로는 칭송하면서도 실제로 그의 업적을 폄하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과, 그의 업적을 받아들이고 싶어도 용기가 없어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충언이기에 굳이 서설을 만들어 쓰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학자들이 단재 신채호가 위대한 역사가라고 한다.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는 불후의 역사서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단재가 왜 위대하며 '조선상고사'가 왜 불후의 명작인지를 조목조목 이야기 하며, 그 업적을 논하는 학자가 그리 많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가장 큰 이유가 고구려 건국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한다. 단재는 하마터면 우리역사에서 지워져버릴 뻔 했던 고조선의 역사를 '조선상고사'에서 바로 세우며, 고구려와 동·북 부여가 건국되고 분리된 연대가 '삼국사기'에 기록된 것처럼 기원전 37년이 아니라, 기원전 190년을 전후로 몇 십 년이라고 했다. 그러한 업적이야 말로 아주 귀중한 것이면서도,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와는 너무나도 이질감을 가질 수밖에 없어서 자칫 역사계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첫째로 고조선 역사를 정립했다는 것은 우리민족과 우리역사의 뿌리를 제대로 찾은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민족이 나아갈 길을 제시해 준 것이다. 단재 스스로 ‘역사가 없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고조선 역사가 없다면 우리 역사는 없는 것이다’라고 했던 말들을 통해서 고조선 역사야 말로 우리민족의 뿌리요, 나아갈 길을 제시해주는 미래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또한 우리가 흔히 남삼한이라 부르는 마한·진한·변한의 뿌리 역시 고조선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만주와 한반도가 이미 고대부터 우리민족의 생활 터전으로 공존 했었다는 것을 밝힌 점이다.


 그 다음은 고구려 건국연대의 재정립에 대한 촉구다. 고조선이 완전히 멸망한 것은 기원전 108년이다. 그런데 만일 고구려가 기원전 37년에 건국되었다면, 동·북부여 역시 기원전 100년 이전에는 건국되지 못한 것으로, 동명제가 복속시킨 부여라는 소국까지 합산해야 겨우 기원전 108년경이 된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우리역사가 고조선에서 끊겼다가 다시 동·북부여와 고구려가 새롭게 건국되는 꼴이 되어 맥을 잃을 수 있다.

 

 즉 그 뿌리를 알 수 없는 전혀 새로운 민족에 의한 새로운 나라로 치부될 수도 있다. 그뿐만 아니라 한나라의 고조선 침공 때 한사군이 만주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반도 안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일제와 식민사학자들의 식민사관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계속)
신용우 행정학박사(지적학전공)/작가/칼럼니스트/영토론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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