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 |
▲ |
한편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이 인공지능(AI) 반도체뿐만 아니라 챗GPT 등 소프트웨어는 물론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 │ 차량 내에 설치된 통신장치로 차량 외부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운전자에게 다양한 정보를 주는 차)’ 등 첨단산업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지난 5월 8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 등 자국 기업이 개발한 AI 소프트웨어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가드레일(Guard Rail │ 안전장치) 마련을 적극 검토 중이다.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이 직접 ‘데이터 유출’ 우려를 표명한 중국산 ‘커넥티드 카’에 대해서도 전면적 수입금지 조치를 불사할 태세다. ‘지나 러몬도(Gina Raimondo)’ 미국 상무장관은 “중국산 커넥티드 카 수입금지와 같은 극단적 조치(Extreme Action)를 단행할 수도 있다”라고 밝혔다. 대(對)중국 고율 관세 대상을 전기차, 레거시(Legacy │ 범용) 반도체, 조선, 철강 등 전 산업 분야로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한 중국의 반발도 한결 거세지고 있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지난 4월 26일 중국 제품에 고관세를 부과한 나라의 상품에 동등한 보복관세를 물리는 내용의 새 관세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슈퍼 301조’와 유사한 ‘중국판 슈퍼 301조’를 만들어 맞대응을 예고한 셈이다. 늘 그래왔듯이 미국·중국 간의 무역전쟁이 격화되면 될수록 미·중 양국에 대한 교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올해 1~4월 전체 수출 2,201억 달러 가운데 대(對)미국 수출은 423억 달러로 전체 수출의 19.2%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대(對)중국 수출은 413억 달러로 차지하는 비중은 18.8%에 달했다. 한국 수출의 38%를 미국과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어서 고래(미·중) 싸움에 새우(한국) 등이 터질 수 있다는 위기감은 더욱더 커지고 있다.
또한 ‘AI 전쟁’ 주도권 잡으려는 주요국의 입법 및 지원이 잰걸음을 걷는 가운데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미래 신사업을 찾는 각국에 AI는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이 와중에 가장 눈에 띄는 건 엔비디아(NVIDIA)다. 인공지능(AI) 열풍 속 엔비디아(NVIDIA) 주가가 고공 행진을 이어가며 지난 2월 반도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시가총액 ‘2조 달러 클럽’에 가입했다. 기업으로서는 꿈의 고지라 일컫는 이 고지를 밟고 ‘2조 달러(약 2,724조 원) 클럽’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애플과 아람코, 마이크로소프트(MS), 엔비디아(NVIDIA), 구글 등 전 세계에 5개뿐이다. AI 반도체의 선두주자로 전 세계 AI 칩의 80%를 장악한 엔비디아(NVIDIA)의 질주는 거침이 없다. 미국은 2020년 ‘국가 AI 이니셔티브법’을 제정하고, 2022년에만 AI 분야에 17억 달러를 투입했다. 지난해에는 AI 안전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일본은 이달 중 열린‘AI 전략회의’에서 그동안 AI 개발을 기업 자율에 맡겨왔던 법적 규제를 제안할 계획이며, EU도 지난 3월 빅테크의 거대언어모델(LLM) 등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내용 등을 담은 ‘EU AI법’을 통과시켰다.
이렇듯 전 세계가 AI 전쟁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답답하게도 한국은 제자리걸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월 9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세액공제를 하면 보조금이 되는 것이니까 재정 여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반도체 기업) 지원을 강화할 생각”이라고 했다. 세액공제라도 하는 것은 다행이지만 보조금 지급에는 선을 긋고 세제 지원만 하겠다는 기존(旣存) 정책을 되풀이한 것으로 우리나라와 경쟁 관계에 있는 주요국들의 천문학적인 보조금 지급과는 괴리(乖離)가 너무도 크다. 국회도 느긋하기는 마냥 마찬가지다. 여야는 이른바‘K-칩스법’이라 불리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제22대 국회로 넘겼다. 연말까지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일몰 규정에 따라 내년부터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가 대폭 감액된다. 세액공제 혜택을 담은 K-칩스법은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 시설에 투자하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에 15%, 중소기업에 25%의 세액공제를 제공하는 법안이다. 현재 국회에 K-칩스법을 2030년까지 6년 더 연장하는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이지만 제대로 된 논의 없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된 상황이다. 제21대 국회 임기를 불과 15여 일 남겨둔 상태에서 ‘AI 기본법’으로 불리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도 자동 폐기의 기로(岐路)에 서 있다.
글로벌 AI 산업에서 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국가 대항전’으로 확전(擴戰)된 치열한 AI 전쟁에서 한눈팔면 바로 뒤처진다. 현실에 안주한 기업에 미래는 없다는 것을 애플의 사례는 이를 극명하게 방증한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애플이 AI 혁명을 외면한 채 AI 생태계에서 소외되며 최근의 매출과 주가 부진으로 이어졌다는 게 시장의 냉혹한 평가다. 혁신 없이 현상 유지에 만족한 기업이 미래를 선도할 수 없다. 미국 증시를 대표하는 7개 빅테크 기업을 뜻하는 ‘매그니피센트7(M7)’에서 빠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 애플의 위기가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다. 1,100억 달러라는 최대 규모의 자사주 매입으로 급락하던 주가는 반등했지만, 애플을 향한 시장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스마트폰 이후 찾아온 인공지능(AI) 시대를 선도하지 못한 채 새로운 생태계에서 소외됐다는 평가가 가장 큰 원인이란 분석이다. 한국경제를 지탱해온 반도체 시장에서조차 TSMC와 엔비디아에게 크게 밀리는 현실에서 우리 기업들이 결단코 잊어선 안 될 참 교훈이다.
용인을 중심으로 사선 방향에 위치한 도시들도 기존 인프라를 토대로 반도체 사업이 활기를 보일 전망이다. 이천에는 SK하이닉스 본사가 있고, 평택에는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이 자리한다. 이렇듯 삼성과 SK는 용인·화성·평택 등지에 약 600조 원을 들여 반도체 산업단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다른 업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투자 규모가 큰 반도체 산업 특성상 보조금은 기업들의 투자를 촉진하고 시장을 선점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75조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뿌려가며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등의 미국 공장 건설을 독려하는 이유다. 우리는 세계적 반도체 기업들을 보유했지만 ‘잡아 놓은 산토끼’라며 소홀히 한다면 반도체 공급망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반도체 경쟁은 살아있는 산토끼로 언제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9일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컨설팅그룹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32년엔 10나노(10억분의 1m) 이하 첨단 공정 반도체 ‘파운드리(Foundry │ 반도체 위탁생산)’ 점유율이 미국은 0%에서 28%로 28%포인트 증가하고 한국은 31%에서 9%로 22%포인트 급감할 전망이다. 현재 대만 TSMC와 함께 세계 첨단 반도체 시장을 양분한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최신 공장을 한국 대신 미국에 짓는 결과가 8년 뒤엔 이렇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미국이 자국 내에 생산라인을 지으면 반도체 보조금을 지원하고 세액을 감면해 주는 ‘반도체 지원법(칩스법 │ Chips Act)’을 통해 527억 달러(약 71조 원) 규모 보조금을 제공하며 공장 유치에 나선 미국 정부 전략이 이처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일대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란 충격적인 그러나 실현성이 큰 예고이자 우리에겐 경고다.
상황이 이렇게 숨 가쁘게 돌아가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은 반도체 투자의 단계별 시간표조차 불확실한 상태로 긴장감도 절박감도 비상함도 없이 기업만 애태우고 있다. 정부가 23년 뒤인 2047년까지 622조 원을 투입해 용인반도체클러스터를 조성하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출발 단계부터 삐걱대고 있다. SK하이닉스 공장 건설은 주민 이주, 용수 문제로 벽에 부딪쳐 3년 늦어진 내년에나 시작된다. 더욱이 투자의 30% 이상을 해외 기업으로 채운 미국, 일본과 달리 한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에 대부분을 의존한다. 예산으로 지원할 수 없다면 행정적인 지원이라도 서둘러서 뒷받침해줘야만 한다. SK하이닉스의 용인 반도체단지 건설은 수년에 걸쳐 토지보상 등 지역 민원을 해소하고 ‘상생협약’까지 체결한 사업이지만, 주민들이 최근 다시 추가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어 2027년 준공 여부가 불확실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0월 9일 회견에서 “시간이 보조금”이라고 말했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기 전에 빠른 지원이 서둘러 이뤄져야 한다. 당연히 정부는 물론 정치권이 힘을 합칠 때다. 특히 지자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한 때이다. 이젠 국가기관은 물론 전 국민이 원팀이 되어야 한다. 누구 하나라도 제 역할을 못 하면 6년 뒤 새롭게 그려질 반도체 세계지도에서 한국의 위상은 심하게 쪼그라들 수밖에 없음을 각별 명심해야 한다. 반도체 첨단 공정은 경제적 필요성뿐 아니라 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반드시 국내에 머물도록 존치하고 지켜내야 한다. 대만이 범국가적 지원을 퍼부어가며 TSMC 공장 사수에 총력전을 벌이는 것도 지정학적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명찰하고 행동하고 실천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대구세계타임즈.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