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종 칼럼) 일하는 방식 개선만으로 ‘출산율 3배 기적’ 이룬 일본 이토추상사

편집국 / 기사승인 : 2024-01-19 13: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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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서울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역임/
전, 소방준감, 서울소방제1방면지휘본부장, 종로·송파·관악·성북소방서장)
일하는 방식만을 개선해 생산성과 출산율을 동시에 높인 ‘기적의 회사’가 저출산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 5대 종합상사 중 하나인 ‘이토추상사’의 사례로 2012년만 해도 이토추상사 출산율은 0.60명으로 일본 평균 합계출산율 1.41명의 절반도 되지 않았지만 2021년 일본 기업 평균은 1.30명으로 줄었는데 이토추상사 여성 직원 1명당 출산율은 1.97명으로 9년 새 출산율이 3배까지 올라 거의 2명을 낳는 셈이니 ‘이토추의 기적’으로 불릴 만하다. 출산율뿐만 아니라 2010년 대비 2021년 노동생산성(직원 1명당 순이익)은 무려 5.2배로 더 크게 올랐다고 한다.

동아일보 이상훈 특파원과 한국경제 정영효 기자, 매일경제 박민기 기자 등에 의하면 화제가 된 이토추상사는 오후 8시 이후 야근을 금지하고 오전 5∼8시 업무를 심야 근무로 인정해 1.5배의 추가근무수당을 지급하고 아침밥을 무료로 챙겨주며 ‘아침형 유연근무’를 하면 오후 3시 퇴근하도록 2010년 ‘일하는 방식’을 바꿔 청년이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정책이 통하면서 이후 합계출산율은 3배, 노동생산성은 5.2배 늘었고 주가는 7.6배, 배당은 8.9배 증가했으며 직원 평균 연봉은 1,254만 엔에서 1,830만 엔으로 45.93%인 576만 엔이나 올랐다. 이 같은 성과가 화제가 되면서 이토추상사는 지난해 아사히신문 등이 선정한 ‘대학생이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 1위에 올랐고, 일본에서 일하는 방식을 개선해 생산성과 출산율을 동시에 높인 ‘기적의 회사’로 통한다.

일본은 2005년 합계출산율 1.26명으로 최저점을 찍은 이후 전방위적인 출산·육아 지원에 나서면서 2015년 합계출산율을 1.45명까지 반등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2022년 다시 1.26명으로 떨어지면서 국가적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4월 저출산 문제 등을 담당할 총리 직속 ‘어린이가정청’을 신설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지난해 6월 자국 여성들의 출산 장려를 위해 250억 달러(약 31조 5,000억 원) 규모의 지원금을 약속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금과 같은 출산 감소 추세가 이어지면 2040년에는 ‘노동자 1,100만 명 공백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연금과 의료시스템 붕괴까지 촉발하는 국가적 위기가 닥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말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어린이 미래 전략’을 발표하면서 다자녀 가구에 대해 2025년부터 대학을 무상화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자녀가 3명 이상이면 셋째는 물론이고 첫째 둘째도 대학 등록금과 입학금을 면제해 주는 내용이다. 의대 등 6년제 대학은 6년간 지원을 받게 된다.

지난해 3월에는 당시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稔)’ 경제산업상이 이토추상사 본사를 방문해 “이토추상사 같은 창의적 발상을 촉진하고 싶다.”라며 ‘이토추 모델’을 확산시키겠다는 방침을 밝힌바 있다. 저출산 대책으로 고민하는 일본 정부는 이토추상사의 일하는 방식 개혁을 모범 사례로 꼽고 확산에 나선 것이다. 이토추상사의 성공적 사례는 이처럼‘이토추 모델’로 추앙되며 일본 정부 경제 정책인 ‘일본 재흥 전략’에 모법 사례로 들어갔고 일본 최대 경제단체 경단련(經團連)이 각 회원사에 도입을 공식적으로 권고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꼽히는 방법은 바로 ‘더 짧게, 그러나 더 열심히’ 일하는 환경 조성이다. 공식 근무 시간은 줄이되 생산성은 높여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성과를 달성하자는 취지인데 그 선두에는 일본 종합무역상사인 이토추상사가 있다. 이토추상사주식회사(伊藤忠商事株式会社 │ Itochu Corporation)는 1858년 이토 추베이(伊藤中兵衛)가 설립한 이토추는 원래 섬유 상사로 시작했다. 20년 전만 해도 옛날식 업무 방식을 고집하던 회사였다. 일이 끝나도 상사 눈치를 보느라 퇴근을 못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부서원이 모두 남아 야근하고 밤늦게 몰려가 회식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2000년대 들어 ‘일하기 쉬운 회사’라는 목표를 세운 이토추상사는 먼저 인사제도 개혁부터 착수했다. 육아기 단축 근무, 배우자 해외 발령 휴직, 관리직 여성 일정 비율 채용 등의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기대만큼 효과가 나오지 않았다. 사내에선 “왜 육아를 하는 직원만 우대하느냐”는 말까지 터져 나왔다. 시행착오 후 회사 측은 목표를 바꿨다. ‘일하기 쉬운’ 대신 ‘힘들어도 보람 있는 회사’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지난 2010년 회장직에 오른 오카후지 마사히로 회장이 가장 먼저 지목한 최우선 과제는 ‘생산성 향상’이었다. 직원들은 오후 8시 이후 사무실에 남아 일하는 것이 금지됐고, 피치 못할 상황을 제외하고는 초과근무도 허용되지 않았다. 이토추상사가 이른 출근을 유도하는 것은 2013년부터 시작한 ‘아침형 유연근무제도’와 ‘110 운동’과 관계가 깊다.

이토추상사는 2013년부터 오전 5∼8시에 출근해 오후 3시부터 퇴근하는 ‘아침형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 해외 무역을 하는 종합상사 특성상 야근이 잦을 수밖에 없는데도 원칙적으로 오후 8시 이후 야근을 금지했다. 그 대신 오전 5~8시 근무를 심야근무로 인정해 일반 야근 수당의 1.5배를 지급하며 새벽 근무를 장려했다. 대부분의 야근은 상사의 눈치를 보며 남아 있는 불필요한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아침형 유연근무를 선택한 직원은 이르면 오후 3시부터 퇴근할 수 있다. 팀 전체가 움직여야 하는 근무는 집중 근무 시간인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에 처리한다. 또한 주 2회 재택근무제도 실시한다. 아이를 키우는 직원이라면 오전 5시에 출근했다가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춰 퇴근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과감하게 일하는 방식을 바꿔 아이를 낳고 부모가 직접 키울 수 있는 근무 환경을 조성하자 출산율이 저절로 올라간 것이다.

또 하나는 “회식은 밤 10시까지 1차로 끝낸다.”라는 ‘110운동’이다. 삼성그룹이 2012년 도입한 ‘119 캠페인(한 가지 술로, 술자리는 1차만 하고, 9시 전에 끝내는 회식 문화)’을 일본 현실에 맞게 수정한 것이다. 아침형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제는 사실 노동생산성을 높여 기업 경쟁력을 키우려는 경영적 판단에 따라 도입됐다. 이토추상사도 초기에는 육아기 단축 근무와 같은 기혼 여직원만 배려하는 조치를 시행했다가 장시간 근무 문화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아침형 유연근무제와 재택근무제를 실시했다. 일단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문화가 정착되자 생산성과 출산율이 함께 올랐다. 야간 근무 수당이 새벽 근무 수당으로 대체됐을 뿐 큰 비용이 들지도 않았다. 이렇듯 ‘이토추 모델’은 아이 수에 따라 매겨지는 현금성 지원, 기혼 여성에게만 집중된 저출산 대책, 각 부처의 예산 확보를 위한 백화점식 정책으로는 출산율 반등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일본을 대표하는 종합 건설기업 ‘다이세이건설(大成建設)’에서도 기적이 일어났다. 2014년 30명뿐이던 여성 관리직이 300명으로 10년 만에 열 배로 늘었다. 다이세이건설이 보다 의미를 두는 변화는 또 있다. “둘째, 셋째를 가지려는 여성 사원이 늘고 있다.”라는 점이다. 다이세이건설의 개혁은 일종의 생존전략 차원이었다. 건설 경기가 고꾸라지는 판인데 기존 남성 중심의 사업 모델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봤다. 여성 사원의 활약을 생존의 열쇠로 본 것이다. 미쓰이스미모토손해보험(MSIG)도 지난해 초부터 동료의 육아휴직으로 업무량이 늘어난 일부 직원들에게 최대 700달러를 지급한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일본 최대 인적자원 회사 리쿠르트홀딩스도 자사 직원들에게 필요시 재택근무를 허용했고 법정 휴일 외에도 추가적인 휴가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한양행은 노동조합과의 단체 협약을 통해 지난해 8월 1일부터 자녀 1명을 출산할 때마다 1,000만 원을 지급하는 출산축하금을 신설했다고 한다. 삼성이 작년부터 시행한 ‘육아휴직 리보딩 프로그램’은 직원이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할 때 부서장 또는 조직이 바뀌거나 동일 업무를 5년 이상 수행한 경우 본인 희망에 따라 기존 경력과 연관성이 있는 업무나 부서에 우선 배치하도록 했다. SK그룹도 정부의 출산 지원 정책에 보조를 맞춰나가고 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난임 치료와 시술을 위한 휴가를 기존 3일에서 5일로 늘리고 관련 의료비도 일부 지원하고 있다. 5일의 휴가기간 역시 전부 유급으로 지원한다. 또 출산 자녀 수에 따라 첫째는 30만 원, 둘째는 50만 원, 셋째 이상은 100만 원 등 격려금을 지원한다. 초등학교 입학 자녀를 둔 직원에게는 3개월간의 돌봄 휴직도 준다. SK이노베이션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통해 9세 이하 자녀 1명당 최대 1년간 하루 4시간만 근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SK텔레콤은 임신·출산 관련 휴가는 ‘셀프 승인’을 할 수 있도록 조직문화를 개선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7월 저출산·육아지원 전담팀(TFT)을 국내 기업 최초로 구성해 눈길을 끌었다.

인구 절벽의 벼랑끝에 선 한국은 곧 심각한 인력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미국 CNN 방송은 지난해 12월 29일(현지 시각) ‘한국군의 새로운 적 : 인구 추계’란 기사에서 “저출산 문제로 인해 한국의 국방력 약화가 우려된다.”라고 전하며,“세계 최저수준의 합계출산율이야 말로 한국군의 가장 큰 적이 될 수 있다.”라고 보도했다. 2006년부터 2021년까지 16년 동안 무려 280조 원이나 쏟아부었는데도 범위를 확대하면 380조 원을 썼다지만 합계출산율은 해마다 최저치를 경신하며 급락하고 있어 2025년 합계출산율은 0.65명까지 떨어질 전망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꼴찌인 한국이 봉착한 저출산 해법으로 이토추와 다이세이건설 사례를 면밀히 연구해야 할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가계의 70%가 맞벌이인 일본에서 이토추와 다이세이건설 사례는 직원 삶의 질 향상과 회사의 성장이 양립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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