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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는 오오에(大江)가 기록한 《靜閑之卷》에는 기술로 ‘신노구라이(眞位)’, ‘누끼미메즈게(발견목부)’, ‘산신매스개(暫新目付)’, ‘무노우노와가래(無刀別)’, ‘다찌아이우께와까래(入合請別)’, ‘요우노구라이(楊之位)’, ‘구루마도리(車捕)’의 명칭이 있었다.
이처럼 《覺梧之卷》 고증문헌에서는 가쯔호(活法)으로서 ‘수차지활, 도처지활, 월음지활, 천남지활, 수월지활, 우호지활, 래광지활, 독고지활, 전도처지활, 후도처지활(袖車之活, 稻妻之活, 月陰之活, 天南之活, 水月之活, 宇戶之活, 來光之活, 獨鈷之活, 前稻妻之活, 後稻妻之活)’의 10개 등의 명칭을 기록하고 있다는 주목할 만하다.
특히 요오신류(楊心流)의 신체기법적 주요특징은 찌르기와 차기의 급소지르기(當身)가 있을 뿐만 아니라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신체적 각 부위를 공략하는 병법이 존재한다. 상대가 제압당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신체를 살리기 위한 양생적 방법에 대해서도 중요시했다. 그는 원래 의사였다. 이러한 요오신(楊心)은 질병 예방에 운동이 필요한 것을 느껴 고족제자와 궁리해 거포오행(居捕五行)의 형태를 고안하여 기합(起合), 행합(行合) 등의 형태로 더욱 발전시켰다(二木謙一.入江 康平.加藤 寬, 1994).
요오신(楊心)의 사후에 두 명의 고족제자는 일찍부터 배웠던 그 기법을 세상에 널리 보급시켰다. 갑(甲)은 요오신류(楊心流)이고, 을(乙)은 미우라류(三浦流)이다. 요오신류(楊心流)는 아부관류(阿部観柳)와 강상사마지개무경(江上司馬之介武経)(호 관류 : 号 観柳)과 도통을 이어 막말(幕末), 즉 에도(江戸) 막부(幕府)의 말기 1854~1867년이 되어 호총언우위문영징(戸塚彦右衛門英澄)과 동언개영준(同彦介英俊) 등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언개(彦介)는 모든 면에서 기량이 뛰어난 달인으로 호총파(戸塚派)를 창안하여 유술(柔術)계를 평정했다.
추산사랑병위의시(秋山四郎兵衛義時)가 창시한 요오신류(楊心流)의 요시토키(義時)는 대략 관문(寛文), 보력(宝暦)의 1661~1763년경 사람이다. 비전장기(肥前長崎)에 살아 소아의(小兒醫)였으나 의학 수행의 목적으로 한토(漢土 : 중국)에 건너가 박전(博転)이라는 사람을 따라 유술삼수(柔術三手)를 배웠다고 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입증되지 않고 있다.
특히 요시토키(義時)의 정확한 기록은 《武術流祖録》에는 무관(武官)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도리데(捕手)의 전수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한토(漢土)의 중국 유술(柔術)은 차고 찌르는 권법 것만으로 당시 일본의 고류 유술(柔術)과는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고 고증문헌에 등장하고 있다.
이에 대한 기록은《柔術記》에 의하면 “그 창업, 개조(開祖)는 야끼야마(秋山)씨, 2대 계승자 오오에(大江)는 공히 알려진 인물이다. 그 시작에 연마하는 것을 적년(積年)으로 만들지 말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요야끼야마(秋山)는 삼수(三手) 이외에 활법(活法) 28종의 전수를 받았다.
그는 이 기법을 가르쳤지만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아서 제자들이 모이지 않았다. 그는 이후 다자이후 덴만구(太宰府天満宮)에 들어가 백일동안 기도해 삼수(三手)를 창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삼백삼수(三百三手)의 신체기법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유파를 창시한 야끼야마는 사가(佐賀)에서 무예수행을 했지만 개안(開眼)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그는 우연히 지나가다가 경내에 버드나무가 있어 폭설에도 이 가지에 눈이 쌓이지 않았다. 버드나무가지가 가늘고 약하게 보이나마 미풍에도 즉각 반응하며, 더구나 그 모습을 잃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적의 움직임에 대하여 어느 때라도 순응할 수 있는 신체와 마음을 갖는다는 뜻에서 유파의 명칭을 정했다”고 한다. 이러한 이치, 즉 유술(柔術)의 신체비법을 “몸 깨침“으로 깨달아 요오신류(楊心流)이라 하는 유명(流名)을 명명했다.
이러한 요오신류(楊心流)의 신체기법은 이우라(居捕 : 앉은 자세로 상대하는 경우), 다찌아이(立合) 교고(行合), 사쯔호(살법 : 殺法 치는 기법 포함), 가쯔호(활법 : 活法 정법(整法)까지 포함) 등으로 구성된다.
그 다음에 대강선병위광부(大江仙兵衛広富)가 더욱 이것을 발전 하였으며 산본민좌위문(山本民左衛門)의 진신도류(真神道流)도 여기에서 발생했다. 또한 등전록헌정(藤田麓憲貞)은 해하등장(海賀藤蔵)으로 시작하여 요오신류(楊心流)를 구보정(久保貞)에게 량이심당류(良移心当流)를 배워 위세자득천진류(為勢自得天真流)를 창시했다. 기우우위문(磯又右衛門)은 요오신류(楊心流)와 진신도류(真神道流)를 배워 그 유명한 천신진양류(天神真楊流)를 창시했다.
그리고 가노 지고로(嘉納治五郎)는 후쿠다 하치조(福田八之助)에게 천신진양류(天神真楊流)를 배워 유도에 모든 것을 전목하고 또 창안하여 유도가 탄생하게 된다. 그래서 현시대의 유도인들은 고류적 측면이 강조된 각종 유술들의 연구하고 전승해야 자연스러운 자연의 극의 진정한 유능제강(柔能制剛)으로 “몸 깨침”이 되어 전통유도로 입문하는 것이라 판단된다.
다른 하나의 유파인 요오신류(楊心流)는 산본민좌위문영조(山本民左衛門英早)가 개조이다. 좌위문(左衛門)은 섭진랑속(摂津浪速)에서 일생을 살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오사카(大阪) 지역이다. 대판어동심(大阪御同心)의 한 사람은 8대 길종(吉宗)과 9대 가중(家重) 무렵의 사람으로 추정된다. 그는 요오신류(楊心流)를 배워 몰래 진신도류(真神道流)를 창안하여 에도(江戸)시대에 그 명성을 떨쳤다. 이 유파에 전해진 전서는 《柔術秘学抄》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문헌이 보인다(山本義泰(1987). 『柔術の技法と思想』, 天理時報社).
“요오신류(楊心流)의 유술(柔術) 궁리의 요체는 마음이 바라는 대로 조금의 구애도 없이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게다가 갑옷을 착용하더라도 마음이 제일 중요하다. 즉, 갑옷에 의해 몸이 지배되거나 몸에 의해 마음이 지배를 받는 게 아니라, 마음에 몸을 따르게 하고 몸에 무기를 따르게 해 내외 일체가 되어 마음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이 유파에 전승되어 전해진 고류유술 전서 중에는 구개조(九箇条)의 대사(大事)라는 것이 있는데 기도류(起倒流) 전서와 일치한다. 즉 후술하는 천신진양류(天神真楊流)에도 같은 것이 신체기법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으나 어느 쪽의 전서인가는 아직까지도 정확하지는 않는다. 다음 편에서 계속 연재한다.
송일훈 박사(동아시아 무예전쟁사·문화교류정책 평론가)
전)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전)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 연구교수
현) 용인대학교 무도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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